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
- 연년세세 中 -
황정은 - 연년세세(年年歲歲)
《연년세세》는 한 해 한 해, 시간의 켜를 따라가며 이어지는 가족과 관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목처럼 '해마다 이어지는 삶'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화려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없이도 독자의 마음을 깊게 파고드는 특별한 힘을 가졌다. 이야기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순간들을 조명하며, 그 안에서 피어나는 관계와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물들이 겪는 변화와 그들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 자신의 기억 속 한 조각을 꺼내보게 된다.
연년세세(年年歲歲)
: 여러 해를 거듭하여 계속 이어짐
제목처럼 해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인물들의 삶이 얽히고, 때로는 풀리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삶과 시간,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늘 우리의 곁에 있지만 쉽게 놓치기 쉬운 일상과 관계를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연년세세》는 일관된 답이 아닌, 각자의 해석과 공감을 통해 이야기를 채워가도록 유도한다.
가족은 언제나 사랑과 갈등이 공존하는 관계다. 《연년세세》에서 그려지는 가족은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갈등과 거리감을 경험한다.
소설 속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때로는 그 과정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갈등조차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해로 변해간다. 작가는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대사와 행동 속에서 잔잔하게 풀어낸다. 그들의 애틋함과 회복을 풀어내는 순간에서 자신과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소설은 시간을 단순히 배경의 순서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는다. 시간은 인물들을 변화시키고, 사건들을 연결하는 매개체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매해 반복되는 계절과 함께 조금씩 변한다. 새해를 맞이하며 결심했던 일들이 흐지부지되기도 하고, 오래 묵힌 감정들이 문득 표출되기도 한다.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마치 우리의 삶처럼 리얼하게 느껴진다. 《연년세세》를 읽다 보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남겼나?'라는 질문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연년세세》는 거대한 서사없이 일상 속 소소한 순간에 집중한다. 가족끼리 나눈 대화, 식탁에서의 짧은 침묵,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인물들에게는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저자는 이처럼 작고 평범해 보이는 순간들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인물들의 소소한 행동과 대사를 통해 “우리의 일상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이야기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연년세세》는 겉으로는 잔잔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읽고 나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큰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시간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관계의 변화와 일상의 아름다움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이야기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소설은 삶이란 결국 크고 화려한 사건이 아니라, 작고 평범한 순간들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바쁘게 살아가다 잊고 있었던 관계의 소중함과 시간의 흐름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면, 《연년세세》를 추천한다.
저자의 이야기가 어떤 여운을 남길지, 책을 덮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연년세세는 단순히 책 한 권을 읽는 경험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다시금 비춰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
책소개
다시 한번, 황정은이 황정은을 넘어서다
나를 이루는 세계에 대한 황정은의 질문
2019년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 선정되고 연작 『디디의 우산』으로 만해문학상 5ㆍ18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독보적인 개성으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 황정은의 연작소설 『연년세세年年歲歲』. 이 책은 작가가 오랫동안 품어온 주제를 펼친 역작이다. 지난해 문예지를 통해 발표한 두편의 소설 「파묘破墓」와 「하고 싶은 말」과 함께 실린 「무명無名」과 「다가오는 것들」은 이번 단행본을 통해 처음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작품으로 출간 전부터 독자들은 물론 문단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선보이는 책마다 작가로서의 경지를 갱신하는 황정은에게 이번 책은 다시 한번 황정은의 문학을 넘어 새로운 획을 그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순일과 둘째 딸 한세진이 이순일의 외조부 묘를 없애기로 하고 마지막 제사를 드리기 위해 강원도 철원군으로 떠나는 이야기인 「파묘破墓」,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이순일의 장녀 한영진의 이야기「하고 싶은 말」, 이순일은 열다섯살에 김포에서 만난 ‘동무, 이웃, 동갑이자 동명同名인 순자’가 떠올라 들려주는 이야기「무명無名」, 북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닷새간 뉴욕에 머문다. 그곳에서 한세진은 노먼 카일리의 딸인 제이미를 만나게 된 「다가오는 것들」까지 이 책에 실린 소설 네편은 ‘1946년생 순자씨’ 이순일과 그의 두 딸 한영진 한세진의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며 이어진다. 어머니와 자매의 지난 삶과 현재의 일상을 통해 지금, 여기의 한국사회를 돌아보게한다.
황정은은 네편의 연작소설을 통해 가족, 사회, 친구, 국가 등 여러 관계 안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겪은 비극과 참사, 크고 작은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어떻게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지를 이순일과 두 딸, 한영진과 한세진, 한세진과 하미영이 나누는 사소한 대화와 평범한 일상을 통해 보여준다.
[교보문고 제공]
작가 인터뷰가 있어, 같이 소개한다.
황정은,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2년 연속 1위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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