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 멈춰 있었다
한 시절의 미완성이 나를 완성시킨다
-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中 -
이훤 -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SNS에서 짤막한 작가의 글을 보고, '언젠가는 한번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근래에 장마가 계속되고 집에서 있는 동안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가 생각나서 빌려보게 되었다. SNS에서 본 글들은 한 권의 시에서 정말 단편적일뿐이였다. 내가 봤던 시 외에도 좋은 글들이 정말 많이 수록되어있고, 작가만의 표현이 긴 장마시즌동안 곱씹으면서 천천히 읽게 만들었다.
시도 조금씩 변화하는 것 같다. 소재도 요즘 시대와 맞고, 형식도 자유롭게 변형되어 표현되고 있다. 예전 시는 정형화된 틀에 맞춰진 시같은 느낌이면, 요즘 시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형식 또한 갇혀있지 않다. 자신의 생각을 SNS에 게시하면서, 짧은 글로 하고싶은 말들을 함축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글들이 모여 하나의 시집이 되고, 한 권의 책이 출간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SNS에서 짤막한 글로 작가를 알게 되었고,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를 알게 되었다. 여러 시들 중 이 시집을 읽게 한 시를 우선 먼저 소개해볼까 한다.
무한히 낙담하고
자책하는 그대여
끝없이 자신의 쓸모를
의구하는 영혼이여
고갤 들어라
그대로 오늘 누군가에게 위로였다
- 그대도 오늘,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中 -
퇴근길 우연히 지하철에서 보고 위로를 얻게된 짤막한 글이였다. 말과 글의 힘은 참 대단하다. 글을 읽고 힘이났고 고난했던 몸과 마음은 잊고 편안한 기분으로 퇴근을 했던것 같다.
너무 낙담하지 말고, 자책하지말고, 고갤 들어라. 그대도 오늘 누군가에게 위로였으니까.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의 뒷편에는 한분순 시인의 해설이 있다. 읽으면서 '무슨 뜻일까' 생각했던 부분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해설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자세히 알려준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면 읽는 것도 추천하지만, 가끔은 내가 생각한대로 내가 느낀대로 이대로 넘어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나만의 기억과 느낌으로. 누군가의 해설로 인해 더 자세히 알 수도 있지만, 각자만의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든다.
아마, 한분순 시인은 현대 사회를 별로 좋지 않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시와 다르게 해설에서는 그런느낌을 받았다. 시를 읽으면서 외로움과 슬픔을 느꼈다면, 해설은 공허함과 삭막함이 감도는 시대를 살고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책소개
문학의전당 시인선 231권. 2014년 「문학과의식」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훤 시인의 첫 시집이다. 조지아공대 출신으로서 문화 월간지 에디터를 거쳐 사진작가이자 칼럼니스트, 시인으로서의 삶을 아우르고 있는 그의 문학과 예술, 사회에 대한 총체적이면서도 깊고 열정적이면서도 내밀한 사유를 엿볼 수 있는 시집이다.
청춘의 서정을 ‘백석을 읽는 새벽’, 그런 영역에 놓여 있다고 한다면 이훤의 시집은 가히 백석의 모던한 부활이라 읽힐 만하다. 마야코프스키처럼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의 절절한 내면을 지닌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이훤의 작품은 직관적으로 또는 애수적으로 또한 역동적으로, 묘한 완전체로써 젊음을 위로한다.
시적이며 동시에 산문적으로 시대와 서정을 얘기하는 것은 이 순간 젊음의 문학적 갈망이다. 이훤이 유의미한 필력에 도달한 것도 이 현대 감성을, 시대정신을 공감이라는 요새에 축조한 힘이 뒷받침한다. 퇴고를 하듯 내면을 가다듬는, 나약해 보이되 폭발적 잠재력을 지닌 시대의 청춘 표상을 기다리는 젊은 현실에서 이훤은 그만의 명확한 영역을 만들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어쩌면 모두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일 ‘오래 모은’ 한 편 한 편의 모어의 결정(結晶)들, 그 ‘빛’이자 ‘빚’인 언어의 ‘과오’들을 애써 떨구어냄으로써 끊임없이 그 자신을 다시 시의 ‘첫 줄’로 되돌려 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알라딘 제공]
좋은 시들이 많아 조금 더 남겨본다.
우산 없는 날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처럼
길 일은 타지에서 문득 발견하는
오래된 나처럼
수 년이 지나서야
문득
이해되는 사소한 말들처럼
온다
희망은 갑자기 온다
- 온다,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中 -
수많은
어제를 리허설처럼 살았다
커튼이 드리우는 또 하나의 나
- 극이 끝나서야 사람들 몰려들기 시작하고,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中 -
37층 빌딩 위 창문을 닦는 중년에게 물었다
"그 높이 두렵지 않으세요?"
"두려웠지 처음 두 달은
이젠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
그게 두려워"
입속 낱말들 일제히 추락했다
- 추락,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中 -
시간을 엎지르고 싶다
그때를 줍고 싶다
- 향수,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中 -
오늘따라 유독 허기가 졌다
황홀을
먹고 싶었다
낭만 실조에 걸린 것 같았다
날 보고, 네가 웃었다
포만감에 숨 쉬지 못했다
- 낭만 실조,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中 -
네가 버리지 못하는 유일한 문장이 되고 싶다
-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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