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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수레바퀴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by a.k.a DUKI 2024.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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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렛을 다시 돌려볼 기회도 없이,
단 한 번의 시도만으로 천국지옥이 결정되는 세계는 너무 가혹하기 때문일 것이다.

-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中 -

 

단요 -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일본 만화 「데스노트」는 청년이 사신의 힘을 얻게되어, 사신의 노트에 그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 상대는 자신의 의지없이 사신의 노트에 적힌대로 죽음을 당하는 만화 이다. 그러한 사람 중 사신과 거래를 하여 사람의 이름과 죽는 날짜가 머리위에 보이는 소녀도 등장을 한다. 소녀는 사람의 이름을 굳이 캐내지 않아도 사신의 눈으로 사람을 처단할 수 있다. 그렇게 그들은 말하는 정의에 따라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과연 이게 옳다고 혹은 옳지 못하다 말할 수 있을까?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는 「데스노트」의 타인의 의한 죽음은 아니지만, 본인의 머리위에 수레바퀴가 있어 그에 따라 천국을 가거나 지옥에 가는 것이 결정된다. 청색이 우세하면 천국에 갈 수 있고, 적색이 많으면 지옥을 갈 수 있다는 설정으로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누구나 머리 위에 뜨는 수레바퀴를 볼 수 있다. 청색이면 우호적으로 다가가서 말을 걸고 지낼 것이며, 적색이면 피하거나 말을 걸기 어려울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수레바퀴는 오른쪽의 이미지처럼 생겼다. 이것이 사람의 머리 위에 항상 떠있고 청색과 적색으로 사람이 평가가 된다면 청색을 더 채우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그대로 살 것인가?

 언제 부터 생겼는지 소설속에서 자세히 설명은 하지 않지만, 어느날 갑자기 생긴 수레바퀴는 사람들의 행동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선행을 더 하도록 부추기는 이 제도를 통해 돈 벌이 수단이 되기도 하며, 불우한 이웃을 억지로라도 도우며 자신의 청색을 채우는 선행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수레바퀴로 더불어 좋은 삶을 살 수있고 서로 베풀면서 잘 살 수있겠지만, 모든 일은 뒷 면의 어둠이 있는 법. 이에 이념에 반대하는 사람도 생기며 아에 수레바퀴를 반대하는 안티휠까지 나타나게 된다.  

 

 천국을 가려면, 사후의 세계에서 안녕을 취하려면 이생에서 선행을 베풀어야한다. 수레바퀴는 세상을 심판하고 있다. 억지로라도 선행을 하면 내 수레바퀴의 눈금은 청색으로 조금씩 기울고 차게 된다. 그래서 지구의 환경을 생각해서 자가용 보다는 대중교통을 사용하고, 남보다 어려운 제 3지대의 나라들을 돕고 후원을 한다. 덕분에 좋은 삶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제 사람들은 죽음을 삶의 종착지가 아니라 중간 기착지로,
새로운 기회이자 탈출구로, 심지어 수단으로 본다.

-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中 -

 

 사회복지사가 이 세상에서는 더 좋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러면 순수수학자나 순수과학자, 철학자 등 실질적 도움은 되지 않지만 필요한 부분에 연구를 하고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필요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 천국에 못가는 것일까? 혹은 회사에서는 좋은 인재를 뽑아야 하는데, 면접자의 수레바퀴가 빨간부분이 더 많다고 뽑지 않는다면 인사 면접관은 적색 영역이 늘어날까? 아님 그대로 일까? 회사는 매출을 내고 직원이 기여를 해서 성장을 하고 그 성장한 대가로 직원들에게 급여를 준다. 팀 분위기를 해칠 사람을 걸러내는 것이 인사 면접관의 일 일 것이다. 이러한 구조인데도 적색 부분이 많은 사람을 뽑을 수 있을까? 

 

 수레바퀴의 심판으로 인해서 세상이 좋아지고는 있다. 범죄는 줄어들고 환경오염의 문제는 나아지고 있으며, 제3지대의 식량과 주거문제에 있던 사람들도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수레바퀴로부터 도망칠 수 없으니 그 안에서 만족할 방법을 찾아야할까? 인위적인 선행이여도 선행을 해야하는 것일까, 천국을 가기위해서?

 

우리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시간이 완전히 잘려나간 시대에 살게 되었다고.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사람들은 시간과 함께 서서히 사위어가는 중이라고.
음울하지만 조금은 낭만적이다.

-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中 -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는 박지리문학상을 받은 장편 소설이다. 구병모 소설가가 추천서에 남긴 것 처럼

'철저히 망해가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도, 이 정도로까지 바싹 코앞에 다가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도무지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않으려 들고 최소한의 의사소통 시도조차 거부하는 시대에 필요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는 생각에 동감 했다. 

 저자가 굉장히 박학다식하다는 느낌을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를 읽으면서 여러번 느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설명하고 접목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굉장히 놀라웠다. 사실 1장만 세 번을 읽었다. 세 번읽으면서 느낀 것은 '내가 문해력이 낮구나' 였다. 굉장히 처음에 어렵게 느껴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모르는 영역의 이야기가 너무 많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읽다 보니, '이러한 삶이 있다면 조금은 지금 보다 나아질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져들어 일게 되었다. 

 수레바퀴에 대한 좋고 나쁨은 독자의 선택이겠지만, 적어도 지금 현재는 더 안좋아지고 있다고 생각은 든다. 인류가 더 생존을 하려면, 수레바퀴와 같은 강력한 규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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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인 세계를 수레바퀴가 구원할 수 있을까?
페이크 르포로 완성한 단요 유니버스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심사위원 이기호, 구병모, 윤경희의 압도적 지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수레바퀴 모양의 원판이 떠 있다. 수레바퀴는 정의를 상징하는 청색과 부덕을 상징하는 적색 영역으로 이분된다. 모두가 볼 수 있고, 과학으로 검증 불가능한 원판은 삶의 행적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하고, 이는 천국과 지옥에 갈 확률로도 이어진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청색 영역의 가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수레바퀴를 미워하는, 안티휠이 된다. 수레바퀴 출현 이후 세계는 바뀌고 있다. 르포 작가 ‘나’는 수레바퀴가 출현한 지 1년이 되는 시점에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바뀐 세상에 대해 기록한다. 그들과의 인터뷰를 책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이 작품은 초월적인 존재인 수레바퀴가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정의를 사람들에게 강요할 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검증하는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세계’라는 거대한 장치 안에 도덕성과 합리성의 관계를 놓고 독자들을 초대해 완성한 단요 유니버스는 페이크 르포임에도 섬뜩할 정도로 현실성을 갖는다.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으로, 첫 책 《다이브》를 시작으로 문윤성 SF 장편 대상을 받은 《개의 설계사》에 이어 당찬 행보를 이어가는 단요 작가의 또 하나의 문제작이다.

☞선정 및 수상내역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교보문고 제공]


 

전통적인 수사로 마무리하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은 이것이 소설이라는 것 - 
즉, 우리에게는 아직 수레바퀴가 나타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건 정말 좋은 소식인가?
나쁜소식이 아니고?


-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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