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공원에서 혼자 뭘 하고 있었던 겁니까?
- 네 이름은 어디에 中 -
재클린 부블리츠 - 네 이름은 어디에(Before You Knew My Name)
'사람들은 왜 살해된 여성이 아닌 살인자를 주목하는가?'
추리 소설 처럼 느껴지는 《네 이름은 어디에》는 추리 소설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주로 추리소설들은 사건이 중심이 되어, 수사에 대한 이야기가 초점이 된다. 이 소설은 살해당한 앨리스 리의 삶과 이야기에 중심을 두고 고 있어서 읽으면서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어떻게 사건이 진행되는지는 앨리스가 스스록 독백을 하거나 루비가 오번 형사에게 말하는 장면, 매체를 통한 현재 상황 정도이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여성들에 대변이며, 안전하게 길을 걸을 수 있는 여성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묻지마 살인.'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좌절당한 앨리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생각보다 이 소설은 이외에도 사회 이슈를 많이 다룬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부색과 머리색, 입은 옷을 통해 지위를 가르며, 매체에서는 백인이였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다. 라는 문구도 있다. 언젠가 들어본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면서 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이 책이 그래서 아마 더 끌렸던 걸까,
루비와 노아는 뉴욕에서 내 북엔드가 되어준 사람들이야.
- 네 이름은 어디에 中 -
이 책은 짧막한 문장들이 굵게 표시가 되어, 뭔가 중요한 사건을 암시하거나 자기 다짐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외에도 좋은 문장들이 있는데, 그 중 맘에 드는 문장이 위에 문장이다. 앨리스가 뉴욕에 와서 살아있을때 도움을 준 노아에게, 그리고 죽어서는 사건을 해결해주고 끝까지 노력해준 루비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자신의 양끝에 있는 북앤드 같은 사람들이라고 표현을 한다. 이 문구를 보면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생각지 못한 좋은 표현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표현방법이 '참 작가 답다' 라고 생각했다.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 아마 참 많았을 텐데, 삶과 죽음에 양끝을 표현하기에 좋은 단어 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작가 재클린 부블리츠은 이 책이 데뷔작이라고 한다. 서정적인 문체, 아름다운 묘사, 놀라운 비유로 크게 호평 받았다고 한다. 읽으면서 느꼈던 작가의 풍(?)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몇몇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이 소설을 큰 축인 죽은 앨리스가 살아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형식인 것 같다. 아마 작가 베르나르 작품들을 이미 읽어본 사람들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한 컨셉이다.
이러한 컨셉이 있다고 다 베르나르 작품을 모티브한 것 아닐것이다. 그러나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고 느낌을 받아서 베르나르의 작품을 작가도 좋아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영미소설은 웬만하면 400쪽은 기본으로 다 넘는 것 같다. 이 책 또한 460쪽이 조금 넘는데, 길면 길고 짧으면 짧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잘한다면 원서로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원서에서 쓰여진 이야기의 표현들이 궁금해졌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는 어슴푸레하고 애매하다.
삶이 어디에서 끝나고 죽음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어느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에드가 엘런 포
- 네 이름은 어디에 中 -
책 소개
오해마시라. 이 소설은 죽은 소녀를 다룬 추리물과 전혀 다르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모든 여성들을 대변하는 소설!
전 세계에서 한 해에 살해당하는 여성의 수는 얼마나 될까? 통계자료를 보면 무려 한 해에 9만 명에 달하는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국내에서도 상대적 약자인 여성들이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들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도가 높고 경각심을 느끼는 분위기가 조성되긴 했지만 여전히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여성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다. 거리를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권리, 자유롭게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국가와 개개인들에게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끔찍한 살인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찰의 무능한 수사를 질타하고, 사회 안전망 미비를 질책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때만 반짝할 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은 거리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있고, 개개인의 자동차에도 블랙박스가 장착되어 있어 범죄를 예방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날이 지능화되고,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는 범죄 행위를 경찰의 수사 능력과 감시 카메라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네 이름은 어디에》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모든 여성들을 대변하는 소설이자 거리를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여성들의 권리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키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앨리스 리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열여덟 살의 나이로 독립적인 삶과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뉴욕에 온다. 앨리스는 수중에 가진 거라고는 현금 600달러와 라이카 카메라가 전부지만 반드시 성공해 독립적인 삶을 열고, 당당한 생활인이 되고자하는 열망을 품고 있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던 앨리스,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길 갈망했던 앨리스의 꿈은 미처 시작도 해보기 전에 철저하게 유린당한다. 사진학교에 들어가 사진을 배우고 싶어 했던 앨리스는 입학에 필요한 포토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허드슨 강가로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약탈자에게 강간당한 끝에 살해된다.
《네 이름은 어디에》는 일반적인 추리소설과 뚜렷이 구별된다. 흔히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범인을 체포하기 위한 경찰 수사에 비중을 둔다. 이 소설은 수사보다는 살해당한 앨리스의 삶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앨리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미처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좌절당한 한 여성의 삶을 통해 ‘묻지마 살인’이 담고 있는 비극의 실체를 직시하게 한다. 누가 그들에게 한 여성의 간절한 꿈을 말살하게 만들었는가?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왜 피해자보다는 경찰 수사와 범인에게 유독 관심이 집중되는가?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던 날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리버사이드 파크에서 조깅을 하던 올해 나이 서른여섯의 루비가 길을 잘못 들어 허드슨 강가를 헤매다가 물이 고여 있는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쓰러져 있는 앨리스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루비는 호주 멜버른 출신으로 한 남자의 내연녀로 지내온 지리멸렬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뉴욕에 온다. 루비는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해 뉴욕에 왔지만 외로운 날들을 보낸다. 앨리스의 시신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은 루비는 그날 이후 줄곧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살해당한 여성은 누구이고, 왜 그토록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깊은 관심을 갖는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던 한 여성의 삶이 약탈자의 살인으로 마감될 수밖에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암울하고 불공평한 곳인가? 뉴욕에 온 앨리스와 루비의 이야기는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여성 살인에 대해 묻는다. 그녀는 누구였는가? 그녀는 왜 살해당해야만 했는가?
[교보문고 제공]
나는 어딘가에 멈춰 서서 당신을 기다린다.
월트 휘트먼
- 네 이름은 어디에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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